아카이브/팬픽

TripLog.02

2021. 1. 25. 22:58

원본 링크

저작자 : @analoguegreen

 

원작: 아날로그 헤이트 스토리

안내사항: 해당 이야기는 헤이트 스토리에서의 하렘엔딩 기반이며, 헤이트 플러스가 발매되기전 설정 기준입니다.

자체 심의: 12세 이용가

 

 

 잠시 쉬려고 무궁화호 AI 둘에게 충전기와 사회학습 도구를 건네고서 침대에 뻗었다. 집을 나설 때마다 몇 달은 기본이니 내 공간이면서도 낯선 감각 속에 뭉그적거렸다. 낮잠을 자기에는 모호하고 강릉 쪽 동해에 갈 걸 미리 검색하려는 차에 통신 패널이 열렸다.

 

“지금 깨있는거 맞아? 음성 허용하는 옵션 걸리긴 하는데.”

“… 너였냐?”

“세상에, 네 연락처 아는 사람 늘어나서 나 인줄 몰랐던 거야? 그렇다면야 나로선 기뻐 눈물이 날 거 같네.”

“장난치지 말고. 무슨 일로 연락이야?”

“2가지 용건이라 해야 하나? 하나는 정기 휴무가 맞아서 간만에 연락 좀 넣은 거고, 다른 하나는 무ㄱ”

“성간 콜로니용 세대 우주선 AI에 궁금한 건 공개 보고서 봐. 저번 주 학회 통해 일반 공개 들어갔어.”

“에헤-이, 공무원처럼 굴지 말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기다렸다 연락한 거라니까 그러네?”

“나 참, 그렇다ㅁ…”

“얍삽하게 보고서 낭독 금지!”

“… … AI의체 튜닝 휴가야, 저녁 먹고서 다시 연락할게.”

“진짜? 꼭이다! 네가 번복 같은 건 하지는 않지만”

 

 통신을 끄고서 혼자만의 공간을 되찾았다. 생체 센서로 제한 설정이 이럴 때 편하단 말이야. 최근 연락목록 상단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상대방 이름을 물끄러미 봤다. 대학원 동기이자, 역사학회 조사팀 입사 동기에다가 고전 컴퓨터학 세부 전공까지 비슷해서 꽤 친한 편이긴 한 데 가만히 있으면 내가 휘둘려서 피곤해진다….

 

“저… 선생님. 아까 다투는 것처럼 들리던데 뭔가 문제가 있나요?”

“그건 아니고… 원래 좀 징한 인연이라, 다른 문제는 없어.”

“다행이네요. 그 보다 쉬시는데 죄송하지만 뮤트가 학습 장치로 지금 애먹고 있어서 잠시 도와주실 수 있나요?”

“버전 다 맞춰도 또 말썽인가? 알았어 10분 뒤에 나가볼게.”

 

 AI 학습장치, 어딘가 오랜 기간 격리됐던 곳에 있던 AI들을 현대 사회에 동화시키고자 개발된 장치.

 리만 가설 증명 이전의 AI들을 원본 코드 없이도 튜닝이 손쉬워졌다고야 해도, 문제는 그 시대의 소스 코드 자체는 수공예 영역인 무언가가 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코드를 전부 읽고 개인의 판독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로 인해 고전 컴퓨터학에서는 수작업이 적지 않으니 아무리 인력을 투입한다 해도 작업자의 피로도와 생산성 문제로 인해 재사회화가 필요한 AI들을 보조하려는 도구 즉, 학습장치가 개발되면서 재사회화 쪽 일감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물론 고전 시대 프로그래밍 언어 버전과 CPI(Clock cycles Per Instruction) 값 같은 세부조정으로 AI의 학습능력을 압도치 않게 하는 작업은 별개지만.

 

“이쪽이 맞대도?”

“뭔 소리야? h가 묵음이지?”

“뭔일이야?”

“어! 선생님. 이거 어떻게 읽는 건가요?”

 

 현애가 내민 페이지에서 마킹된 부분을 봤다. 25세기 이전 고전 영화 유명감독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영문 표기된 인명 중 마킹된 이름은 ‘Bong Joon-ho’였다.

 

“이게 왜?”

“한국 쪽 인명 읽는 법상 봉준호일 텐데, 뮤트가 봉준오라고 우기잖아요?”

“지금 읽는 법상 ho는 ‘오’라 읽는다고 봤대도?”

“어… 봉준호가 맞긴 맞아.”

“내 말 맞잖아!”

“인정 못 해!”

 

 언제더라? 아침부터 기시감이 있었는데, 집에 누굴 초대한다거나 머물게 한 경우가 극히 드문데도 보호자 역할로 골머리 앓긴 했는데 도통 안 떠오르던 기억. 그리고 조금 전  시시비비로 기억났다. 조카들이었다. 아무리 지식 상 의무교육을 거친 성년 급 이상이어도 대인 교류는 별개이니 사람으로 치면 알맹이는 어린 조카들과 다를 게 없었다.

 

  학습장치에 긴급 패치를 처리하고 나니, 늦은 저녁 시간이 됐다. 일 처리는 끝냈고 배는 고픈데 식욕은 없으니 이번 출장에 남겨둔 비상식량을 꺼내먹으면서 통신을 시작했다.

 

“아이고, 배야. 그래서? 결국, 뭘로 해결했어?”

“말도 마. 출항 후 사회 퇴보 때 아주 개떡같이 개조된 부분 쪽 다시 보고 대조군 AI하고는 다른 추가 세팅하느라 밥도 못 먹고 이제야 쉬는 거래도. 암호는 그냥 나 좀 해체해주세요 수준이더라니”

“무식하게 개조된 레거시 코드 손보느라 욕봤어. 아주 걸작이네.”

“웃기냐?”

“반쯤은 농담이지, 고전 시대 AI들 사후처리도 말이 좋아 재사회화를 위한 보조 및 보호인 거지. 그냥 보모역할이잖아? 게다가 레거시 코드는 리만이 와도 구제 못 한다는 자학개그라도 없으면 무슨 낙이겠어?”

 

 업계인 자학개그라 하니 뭔가 슬퍼진다. 허기를 채우기 위해 에너지 바를 씹으면서 뇌파 음성 전화를 하던 중 불현듯 떠오른 게 있어 내 쪽에서 질문을 던졌다.

 

“… 지금껀 얼마나 꼬여있어?”

“뭐?”

“이 시간에 칼같이 연락받는 건 전혀 진전 없어서 쉴 때뿐이잖아?”

“어라? 갑자기 의뢰팀 연락이네~ 다음에 연락하자. 안녕~”

“야! 너!!”

 

 

아무말 후기.

 ‘AI Vs. 사람’에 이은 ‘외향인Vs.내향인’으로 복합적인 대화에 조사관은 오늘도 개인 패널 한 켠에 사직서 파일을 보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철학이나 역사쪽 학문이 고전, 중세, 근세, 현대등으로 나뉘는것처럼 컴퓨터에 대한 학문도 4989년에는 시대별로 나뉘지 않을까로 가정해 무궁화호가 출항한 25세기를 기준으로 고전 시대 컴퓨터학으로 설정했습니다.  이글을 읽는 시점이 몇 세기일지 모르지만(?) 작중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50세기니 저쪽 사람들에겐 20~29세기는 고전취급이 될거 같네요.

 디테일을 파고들려고 용어랑 정의쪽을 다시 봤었는데, 2천자 안팎짜리에는 밸런스가 안 맞아 최대한 덜어냈습니다.

 

참조자료.

David A Patterson, John L Hennessy. 컴퓨터 구조 및 설계: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역: 박명순, 김병기, 하순회, 장훈. 판차: 5th. 서울: 한티미디어,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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