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아날로그 헤이트 스토리
안내사항: 해당 이야기는 헤이트 스토리에서의 하렘엔딩 기반이며, 헤이트 플러스가 발매되기전 설정 기준입니다.
자체 심의: 12세 이용가
“여행...이요?”
“여행...을 뭐?”
“어, 여행. 무궁화호 보고랑 역사 학회쪽 마무리도 끝난데다가 이번에 휴가 날짜 잡았거든.”
“갑자기 그렇게 말씀하셔도”
“조사관 나리, 댁은 맨날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어?”
사실 자유도 됐겠다 이곳을 박차고 나가자니, 마땅한곳이 없어 ‘여행’이라는 명분을 붙인거다. 지구로 귀환하고 몇 달간 초과근무와 조사업무때문에 학회에서 제공한 기숙사와 세미나 장소만 오가던 일정도 끝냈겠다 이젠 퇴실하려니 집에 가봐야 마땅히 할게 없다.
“그러고 보니 나으리. 댁은 기혼 아니였어?”
“약혼에서 생활 동반자이긴 했는데, 깨졌어. 그 인간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어… 저기 그러니깐… 이럴때 돌싱이라 하는거 맞죠! 선생님?”
“아마도 맞을걸? 어쨋건 이 건수는 이제 넘어가자.”
요즘 틈날 때마다 25세기 이전 고전 영화 150선을 하나씩 보는 중이라더니, 알아듣기 힘든 단어를 쓸 때마다 곤혹스러워진다. 최근 거기에 나온 단어들을 언급하면서 설명해준 것 중에 있던 말이라 간신히 알아들었지만.
“지금 연말이라 사람 북적이는 데가 좀 많겠지만, 다들 지구에 처음 왔으니 관광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없어?”
“허 참. 이래서 관직에 있는 자들이란.”
“따지고 보면 황실 관리자 소속이었던 네가 할 말인가?”
“뭐, 뭐라고? 맨날 말대답이야. 야! 너 몇 살이야?”
“넌 디지털이고, 난 생물체인데 그걸 일괄적으로 비교하는 게 맞겠냐? 어?”
“선생님도 뮤트도 제발 진정해요. 복도에서 이렇게 싸우다간 경고장 오잖아요.”
현애의 제지를 듣고 잠시 통신 패널을 봤다. 경고장은 안 왔지만, 기숙사 내 정숙 요청 안내가 개인 메시지로 들어온 상태다. 퇴소부터 마무리 하는게 나을 거 같다.
19세기 이전 왕조를 모방한 사회를 300여 년간 학습하고 유지해온 AI를 상대로 약 3천 년 후인 현대 표준을 내뱉기만 해서는 대화가 원활치 못한 걸 알고야 있어도 실제로 대할 때마다 이도 저도 못 하고, 24세기 때 AI니 지금의 딥러닝 같은 재사회화를 기대하면 안 된다….
함선에서야 버튼을 통한 최소한의 의사전달이고, 말하는 건 주로 AI들이었으니 대화상 별다른 말썽이 없었어도 의체 지급 후 복합적인 대화가 가능해지면서 뮤트하고의 마찰이 빈번해 솔직히 좀 피곤하다. 이대로 집에 데려가 봐야 보호 관찰 담당인 나만 죽어날 테니, 이쪽 문물이나 문화를 체험케 하려는데 공직자 출신인 뮤트가 오히려 이런 상황파악을 더 못하고 오히려 영화로 사회를 배우고 있는 현애 쪽이 현대 사회 동화율이 더 양호하다.
“이동하면서 마저 이야기하자.”
“그래, 잠시 체통도 잊고 새파란 인간하고 언성이나 높이다니 나도 참 퇴물이네.”
“그렇게까지 자책지는 말고. 굳이 말하면, 퇴직상ㅌ…”
“뭐?”
“저기 전차 온다. 빨리 타!”
“같이 가요, 선생님. 뮤트도 빨리와.”
“이것들이 정말!”
플라즈마 전차에 올라서면서 움직이는 타임캡슐들과 함께하는 보호 관찰 임무도 시작됐다.
“있잖아, 그래서 우린 어디로 갈까?”
“조사관 나리 댁 가는 거 아니었나?”
“여행계획”
“맞다, 그거. 정하다 말았지.”
“여긴 이제 연말이어서 어디건 사람 미어터지고, 휴가 기간이 좀 짧아.”
“며칠 정도에요?”
“3일. 참고로 30일인 오늘부터야.”
“뭐어? 대체 그 관청은 일 처리가 왜 그 모양이야?”
“… … …”
“어이, 김현애 너도 좀 뭐라 해봐. 관직에 있으면서 이런 물렁한 나리 때문에 우리까지 휩쓸리게 생겼어.”
“저기 그러면…”
“응?”
“겨울 바다 괜찮을까요?”
“겨울 바다라… 그것도 나쁘진 않겠어. 연말 해돋이 좋지.”
“나만 빼고 다들 이러냐? 아 몰라, 이젠 너희 맘대로 해라.”
아무말 후기.
2016년 1월 21일 목요일, 오후 7:40:50에 처음 쓴걸로 추정되는 메모장 파일.
하드웨어에 영영 냉동되겠다 싶던 4컷툰 플롯을 단편 글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쓰다보니 현애 분량이 적네요.
참조자료.
길리짐. “헤이트 시리즈 연표” Accessed 2021-01-03, https://analogue-archive.tistory.com/119
이원규. “플라즈마란?” Accessed 2021-01-03, https://www.cheric.org/research/ip/ipview.php?code=p201706
크리스틴 러브. “Analogue: A Hate Story” Accessed 2021-01-03, http://ahatestory.com/kr/